[청와대로 찾아간 간호사들][청와대로 찾아간 간호사들] #05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하라! (강원대병원 김은정 간호사)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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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찾아간 간호사들]

6/29(월) ~ 7/3(금)

1인 시위 및 발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섯번째로 7월 3일(금)에는

강원대병원 김은정 간호사님이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전체 발언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KOHHLU0GpJU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7년 3월 강원대병원 입사하여 올해로 4년차 되는 간호사 김은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감염병동에서 근무 중이며 코로나19 확진자 및 폐렴 선별 환자를 간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이러한 상황에 서울을 오가는 것도 조금 무섭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떻게 청와대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는지, 아니 찾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부터 제 일화와 현장에서 간호하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저희 수 선생님께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저에게 가끔 농담 삼아 이런 말씀을 하고는 하셨습니다. “ 그럼 너는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야?!” 저는 그때마다 “ 아뇨, 그 때는 일을 그만둬야죠, 선생님!” 하고 웃으며 대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만두어야 할 시기가 자꾸만 한 움큼씩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낭떠러지 위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매일을 그렇게 휘청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는 기분입니다.


 입원환자 현황을 보고 걱정된 나머지 아이들 밥상을 차려주고 난 뒤 부랴부랴 주말 출근길에 오르신 수 선생님을 보자마자 저는 염치 불구하고 “선생님, 저 진심으로 도망가도 되나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수 선생님은 근무하는 날이 아님에도 책임감 하나로 출근을 하셨고 말없이 근무복으로 옷을 갈아입으셨습니다.

 

 언제나 명랑하고 밝은 기운을 내뿜으시던 수 선생님조차 최근에는 눈물을 보이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셨습니다. 어떤 심정인지는 감히 헤아려 볼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본인도 감당 못할 업무 부담감, 그에 따른 피로, 관리자로써의 책임감, 간호사로써의 사명감, 그 외 가정에서는 엄마의 역할을 해내셔야 했던 수 선생님. 그간 쌓여 있던 것들이 해소되지 못하다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 폭발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선생님은 저희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병동에 근무하면서 자신보다 고위 상급자인 수 선생님의 눈물을 볼 수 있는 간호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던 저는 진지하게 사직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중한 업무와 풀리지 않고 쌓여만 가는 피로로 인하여 매일 매일을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간호사 생활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 뿐입니다.


 전에는 환자들을 간호하며 일에 대한 자긍심, 보람이 느껴졌지만 요즘은 일을 해도 보람은커녕 희망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자신조차 스스로 간호하지 못하는 상황에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져 버닝 아웃 상태를 넘어선 무력감, 우울증, 극도의 피로감만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출근을 해서 아픈 환자를 돌보는 시간보다 

힘들고 아프고 지쳐있는, 그렇지만 사명감 하나만을 붙잡고

그 모든 것을 인내하고 참아야만 하는 의료진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제는 지친다고 말하기도 지치고 힘들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어쩌다 업무의 힘든 점을 주변에 얘기하면 돌아오는 말은 항상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지.”라는 말 뿐입니다. 그렇게 참고 또 참아서 늘어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월급? 휴식시간? 쉬는 날? 업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었습니까? 아니오! 과도한 업무, 사직한 직장 동료 및 선·후배들, 불면증, 수면제, 진통제, 각종 영양제, 감정조절장애, 외로움을 얻었고, 오히려 건강을 잃고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었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아니,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지, 너희가 조금만 더 양보해라, 너희가 더 희생해라.” 이런 말도 더 이상은 듣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말은 공감도 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지금도 충분히 힘든 사람에게 2차적으로 가해를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병원에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너무 바쁘면 밥조차 못 먹는 상황인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저는 희생하고 양보하기 위해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직업을 ‘직업’으로써 존중해 주십시오.


 음압 방에서 일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수면제 없이 잠 못 드는 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신발 벗고 도망치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어떤 날은 자다가 병원 꿈을 꾸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깨어나기도 합니다. 너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사직을 해야 합니다. 못 버티는 게 죄입니까? 어떤 강인한 이도 못 버티게 만드는 근무 환경에는 죄가 없습니까?


언론은 코로나에 시선 집중을 하고 

국민들은 ‘의료진 덕분에’를 외치지만

저희는 ‘코로나 덕분에’를 외칩니다.

이미 그 전부터 인력 부족과 열악한 환경 등에 지쳐있던 간호사들은

말 그대로 ‘코로나 덕분에’ 붕괴되고 있습니다.


매번 인력 부족, 일할 때의 고충 등을 말해도 그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참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면 기다리는 사람은 속에서 울분이 나서 화병이 납니다. 이미 많은 기사 자료들에서 OECD 국가들과 비교해가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얼마나 인력이 부족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손가락 몇 개만 튕겨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것을 2013년 학생 때부터 학교에 과제로 제출해 왔던 사람입니다. 인터넷에 간호 인력 부족이라 검색하면 자료들이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변한 것이 무엇이 있나요? 현재 저희병원을 예로 들어볼까요? 저희 병원은 현재 간호 인력 정원이 약 50명 정도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정원 중 86명은 수습직인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로 약 140명 정도의 경력직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 말인 즉슨, 남아있는 인력이 뼈를 갈고 피를 토하며 남은 몫을 채우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의료의 질 저하,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모든 문제가 결국은 여기에서 파생된다고 봅니다. 


 집에서 공부할 시간은커녕 제대로 휴식할 시간도 손에 꼽는데 이제 막 병원에 적응했다 싶었더니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보면서 새로 입사한 신규 선생님 교육까지 해줘야 하는 상황, 그리고 매년 이러한 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러한 상황에 지친 누군가는 살기 위해 현장을 떠납니다. 그리고 악순환은 계속 됩니다. 다른 지방 병원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꾹 참고 버티며 지금도 현장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계실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 쳐드리고 싶습니다.


 간호대학 정원을 늘려서 지방병원 인력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보여주기 식 대안이 아닌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주시고 현장 간호사의 업무 부담감부터 줄여주십시오. 혹은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등 신종 감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그때마다 무너질 것입니다. 버티고 싶습니다. 제가 간호하고 있는 환자를 내팽겨 두고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살고 싶습니다.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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