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4년부터 1년 8개월을 어느 지방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를 일을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자살충동 등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열악한 인력문제로 겪은 일을 하나 말해드리겠습니다.
이브닝 근무 때 신규간호사인 저와 경력간호사 선생님은 4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실 역시 동시에 담당해야 했습니다. 응급환자가 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어느날 응급환자가 도착하였고 이 두명의 간호사는 40명의 환자를 버려두고 응급실 환자를 봐야 했습니다. 그날따라 40명 환자 중 어떤 분의 상태가 나빠졌었고 간호사를 찾지 못한 흥분한 보호자는 간호사실에 난입해 과도로 본인의 배를 그엇고 간호사들을 위협하였습니다.
이런일을 겪고도 다음날 보호자분에게 사과를 하고 계속 일을 해야했습니다. 왜 간호사들이 이런 일을 겪고도 사과해야 할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부족한 인력으로 간호사분들이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두 분의 간호사님들의 발언을 대독하려고 합니다.
최정화 간호사
얼마전 sns에 어떤 간호사의 하소연이 쓰여졌습니다. 근무 중 고열이 나서 관리자에게 얘기한 후 선별진료소에 가게된 상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간호사는 38.6도나 되는 고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결과 음성확진과 동시에 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에게 “아픈 것은 민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이 간호사의 사연은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간호사라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입니다. 저의 동료 간호사는 인력부족으로 힘들게 일하던 중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쳐 결국 최근에 퇴사를 했습니다. 인력이 좀 더 보충되어 마음에 여유가 있었더라면 퇴사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병원은 '간호사 구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간호사는 '일은 힘든데 급여가 적어 그만 둔다.'고 말합니다.
그러는 사이 간호대 졸업생 수는 급격히 늘고 있고 고강도의 간호노동 문제와 인력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열악한 병원 현장은 쳇바퀴 돌 듯 변함없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일명 태움이라고 일컫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로 간호사들이 목숨을 끊는 일들이 있어왔지요. 이 문제 또한 간호인력 부족 문제와 노동 강도의 문제가 그 배경에 깔려있음을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규간호사 배출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증의 절반이 장롱면허증입니다. 그리고 면허간호사 중 임상간호사의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50%대입니다. 그리고 OECD 국가 대부분은 병원 간호사 1인이 평균 6~8명의 환자들을 돌보지만 한국 병원 간호사들은 평균 15~20명의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1인이 간호하는 환자수는 환자의 사망률 및 부작용 발생율과 직결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간호인력 문제는 국민건강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공공의 문제인데도 사회적으로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처럼 간호사가 아플 때 부담없이 쉴 수 있는 간호인력을 확보해야 국민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간호의 질은 간호등급제가 아닌 간호사 1인이 돌보는 환자수를 정하는, 처벌이 가능한 간호인력법을 만드는데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저는 세 명의 간호사가 한꺼번에 사직하여 인력 공백이 생긴 병동에서 4월부터 근무해 오고 있었는데 또 갑자기 세 명의 간호사가 사직을 하게 된 또 다른 병동으로 7월부터 재배치되어 일을 하게 된, 지방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방 종합병원은 신규간호사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입사한 간호사가 이직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일에 비해 급여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병원 규모별, 지역별 급여 편차가 심합니다. 간호사 표준임금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경력단절이 있는 경력간호사라 이직이 쉽지 않더라도 급여인상의 욕구가 있지만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방의 병원들이 대부분 경영이 어렵다고 합니다. 부도 위기에서 회생한 병원이 그나마 유지되는 걸 더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수가 조금 줄었다고 인건비를 위해 근무자 수를 줄인다며 근무표를 변경하여 변경된 근무표를 하루 전에 문자로 받고 출근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력문제, 급여문제 이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쉽게 목소리 내기 쉽지 않은 것이 지방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사정입니다. 이 문제는 10%대의 우리나라 공공의료 상황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간호사이고 싶습니다. 간호사도 사람이니까요.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만이 지방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호주로 간 한국 간호사
저는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에 면허를 취득하여 간호사로 5년 정도 일한 뒤 호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간호학생이고 곧 간호사 면허가 나오게 됩니다.
저는 한국에서 4년 동안 간호학과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만족스럽게 대형병원에 취직 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간호학 공부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간호사를 시작할 쯤엔,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밤낮이 바뀌고, 항상 바쁘게 마음 졸이며 일하고, 심지어 야간근무때에도 눈 붙이긴 커녕 시간에 쫓기며 일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고된 육체적 정신적 노동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우울과 불안, 불면으로 결국은 간호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직 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남긴 채 호주로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간호사와 환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너무나도 바빴고, 그런 나머지, 배운대로 간호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꼼수를 부려야하기도 했습니다. 기계처럼 일하는데도, 제 시간에 일을 마치기는 커녕, 오버타임의 연속이었고, 일하는 중에 식사는 거르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호주에서 경험한 간호는 다릅니다. 물론 이곳의 병원이라고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쁨의 질이 차이가 났습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히 사정하기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환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더 많이 들어줄 수 있습니다. 고위험약물을 투약할 때는,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간호사와 같이 확인을 하여 투약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들더라도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처음 사용하는 약물이나, 수액과 섞어서 정맥투여를 해야 하는 약물의 경우 항상 약전을 찾아보는 것이 신규 간호사에게든 30년차 경력 간호사에게든 그것이 당연한 일이며, 한국에서처럼 ‘바쁜데 그것도 모르고 책 찾아보고 있냐’는 타박 같은 것을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체중이 무거운 환자를 옮기거나 자세를 바꿔줘야 할 때에도, 한국에서는 시간에 쫓겨 혼자 억지로 옮기다 허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환자가 움직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기다려주고, 최소한의 보조를 해주는 것과 동시에, 혼자 거동을 시킬 수 없는 경우에는,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꼭 다른 간호사와 함께 환자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며, 무조건 지켜져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간호사는 아프면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아프더라도, ‘다음달 스케줄 나오기전에 예약하고 아파야 한다’라는 웃지못할 이야기는 어느 교대근무 간호사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픈 와중에도 나를 대신해서 일해줄 간호사가 없기 때문에, 아픈 채로 출근을 하고, 내 팔에 링거를 맞아가면서 환자에게 줄 약물을 준비하고, 차팅을 하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함께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가 임신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늘어날 내 나이트 근무의 개수, 짤릴 휴가 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며, 심지어는 지금 너가 임신을 할 순번이 아니라는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 호주에서는 적어도 내가 아프거나, 나의 자녀가 아플 때, 또는 어떠한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일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됩니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만이 아닌, 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 등 병원에 간호인력이 충분하여, 병동간호사들로 다 채워지지 않는 날에는 그러한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대신 일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한국과 달리, 간호사의 업무강도가 어느 곳이나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며, 모든 간호행위가 정해진 프로토콜이나 가이드라인을 따라 수행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는 정말 많은 40대 이상의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3교대를 하며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심지어 70살 생일을 맞이한 간호사와 함께 야간근무를 하며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준 적도 있습니다. 그 간호사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체력적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일할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퀸즐랜드주의 일반적인 공립병원에서 간호사 1명당 환자 4-5명정도를 담당하며, 사립병원에서는 6명정도, 야간에 8명정도의 환자를 담당했습니다. 또한 빅토리아 주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일반 병동의 경우 4-5명 정도로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한이 시작된 이후 임상을 떠났던 많은 유휴 간호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고, 간호사-환자의 비율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도 호주와 마찬가지로 간호사 본인이 건강한 상태로, 환자에게 안전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고, 그 일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게 될 것이고, 많은 유휴간호사들 또한 다시 임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호사에게 적절한 양의 업무와, 일하고 싶은 근무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청와대로 찾아간 간호사들]
6/29(월) ~ 7/3(금)
1인 시위 및 발언을 진행중입니다!
세번째로 7월 2일(목)에는
이민화 간호사님이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를 위한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2명의 간호사 발언 대독함)
전체 발언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8N5Q34j_MxI
안녕하세요.
저는 유휴간호사 이민화라고 합니다.
저는 2004년부터 1년 8개월을 어느 지방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를 일을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자살충동 등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열악한 인력문제로 겪은 일을 하나 말해드리겠습니다.
이브닝 근무 때 신규간호사인 저와 경력간호사 선생님은 4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실 역시 동시에 담당해야 했습니다.
응급환자가 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어느날 응급환자가 도착하였고 이 두명의 간호사는 40명의 환자를 버려두고 응급실 환자를 봐야 했습니다.
그날따라 40명 환자 중 어떤 분의 상태가 나빠졌었고 간호사를 찾지 못한 흥분한 보호자는
간호사실에 난입해 과도로 본인의 배를 그엇고 간호사들을 위협하였습니다.
이런일을 겪고도 다음날 보호자분에게 사과를 하고 계속 일을 해야했습니다.
왜 간호사들이 이런 일을 겪고도 사과해야 할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부족한 인력으로 간호사분들이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두 분의 간호사님들의 발언을 대독하려고 합니다.
최정화 간호사
얼마전 sns에 어떤 간호사의 하소연이 쓰여졌습니다.
근무 중 고열이 나서 관리자에게 얘기한 후 선별진료소에 가게된 상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간호사는 38.6도나 되는 고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결과 음성확진과 동시에 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에게 “아픈 것은 민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이 간호사의 사연은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간호사라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입니다.
저의 동료 간호사는 인력부족으로 힘들게 일하던 중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쳐 결국 최근에 퇴사를 했습니다.
인력이 좀 더 보충되어 마음에 여유가 있었더라면 퇴사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병원은 '간호사 구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간호사는 '일은 힘든데 급여가 적어 그만 둔다.'고 말합니다.
그러는 사이 간호대 졸업생 수는 급격히 늘고 있고 고강도의 간호노동 문제와 인력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열악한 병원 현장은 쳇바퀴 돌 듯 변함없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일명 태움이라고 일컫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로 간호사들이 목숨을 끊는 일들이 있어왔지요. 이 문제 또한 간호인력 부족 문제와 노동 강도의 문제가 그 배경에 깔려있음을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규간호사 배출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증의 절반이 장롱면허증입니다. 그리고 면허간호사 중 임상간호사의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50%대입니다. 그리고 OECD 국가 대부분은 병원 간호사 1인이 평균 6~8명의 환자들을 돌보지만 한국 병원 간호사들은 평균 15~20명의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1인이 간호하는 환자수는 환자의 사망률 및 부작용 발생율과 직결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간호인력 문제는 국민건강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공공의 문제인데도 사회적으로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처럼 간호사가 아플 때 부담없이 쉴 수 있는 간호인력을 확보해야 국민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간호의 질은 간호등급제가 아닌 간호사 1인이 돌보는 환자수를 정하는, 처벌이 가능한 간호인력법을 만드는데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저는 세 명의 간호사가 한꺼번에 사직하여 인력 공백이 생긴 병동에서 4월부터 근무해 오고 있었는데 또 갑자기 세 명의 간호사가 사직을 하게 된 또 다른 병동으로 7월부터 재배치되어 일을 하게 된, 지방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방 종합병원은 신규간호사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입사한 간호사가 이직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일에 비해 급여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병원 규모별, 지역별 급여 편차가 심합니다. 간호사 표준임금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경력단절이 있는 경력간호사라 이직이 쉽지 않더라도 급여인상의 욕구가 있지만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방의 병원들이 대부분 경영이 어렵다고 합니다. 부도 위기에서 회생한 병원이 그나마 유지되는 걸 더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수가 조금 줄었다고 인건비를 위해 근무자 수를 줄인다며 근무표를 변경하여 변경된 근무표를 하루 전에 문자로 받고 출근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력문제, 급여문제 이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쉽게 목소리 내기 쉽지 않은 것이 지방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사정입니다. 이 문제는 10%대의 우리나라 공공의료 상황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간호사이고 싶습니다.
간호사도 사람이니까요.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만이 지방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호주로 간 한국 간호사
저는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에 면허를 취득하여 간호사로 5년 정도 일한 뒤 호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간호학생이고 곧 간호사 면허가 나오게 됩니다.
저는 한국에서 4년 동안 간호학과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만족스럽게 대형병원에 취직 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간호학 공부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간호사를 시작할 쯤엔,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밤낮이 바뀌고, 항상 바쁘게 마음 졸이며 일하고, 심지어 야간근무때에도 눈 붙이긴 커녕 시간에 쫓기며 일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고된 육체적 정신적 노동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우울과 불안, 불면으로 결국은 간호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직 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남긴 채 호주로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간호사와 환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너무나도 바빴고, 그런 나머지, 배운대로 간호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꼼수를 부려야하기도 했습니다. 기계처럼 일하는데도, 제 시간에 일을 마치기는 커녕, 오버타임의 연속이었고, 일하는 중에 식사는 거르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호주에서 경험한 간호는 다릅니다. 물론 이곳의 병원이라고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쁨의 질이 차이가 났습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히 사정하기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환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더 많이 들어줄 수 있습니다. 고위험약물을 투약할 때는,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간호사와 같이 확인을 하여 투약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들더라도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처음 사용하는 약물이나, 수액과 섞어서 정맥투여를 해야 하는 약물의 경우 항상 약전을 찾아보는 것이 신규 간호사에게든 30년차 경력 간호사에게든 그것이 당연한 일이며, 한국에서처럼 ‘바쁜데 그것도 모르고 책 찾아보고 있냐’는 타박 같은 것을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체중이 무거운 환자를 옮기거나 자세를 바꿔줘야 할 때에도, 한국에서는 시간에 쫓겨 혼자 억지로 옮기다 허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환자가 움직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기다려주고, 최소한의 보조를 해주는 것과 동시에, 혼자 거동을 시킬 수 없는 경우에는,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꼭 다른 간호사와 함께 환자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며, 무조건 지켜져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간호사는 아프면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아프더라도, ‘다음달 스케줄 나오기전에 예약하고 아파야 한다’라는 웃지못할 이야기는 어느 교대근무 간호사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픈 와중에도 나를 대신해서 일해줄 간호사가 없기 때문에, 아픈 채로 출근을 하고, 내 팔에 링거를 맞아가면서 환자에게 줄 약물을 준비하고, 차팅을 하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함께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가 임신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늘어날 내 나이트 근무의 개수, 짤릴 휴가 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며, 심지어는 지금 너가 임신을 할 순번이 아니라는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 호주에서는 적어도 내가 아프거나, 나의 자녀가 아플 때, 또는 어떠한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일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됩니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만이 아닌, 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 등 병원에 간호인력이 충분하여, 병동간호사들로 다 채워지지 않는 날에는 그러한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대신 일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한국과 달리, 간호사의 업무강도가 어느 곳이나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며, 모든 간호행위가 정해진 프로토콜이나 가이드라인을 따라 수행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는 정말 많은 40대 이상의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3교대를 하며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심지어 70살 생일을 맞이한 간호사와 함께 야간근무를 하며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준 적도 있습니다. 그 간호사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체력적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일할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퀸즐랜드주의 일반적인 공립병원에서 간호사 1명당 환자 4-5명정도를 담당하며, 사립병원에서는 6명정도, 야간에 8명정도의 환자를 담당했습니다. 또한 빅토리아 주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일반 병동의 경우 4-5명 정도로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한이 시작된 이후 임상을 떠났던 많은 유휴 간호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고, 간호사-환자의 비율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도 호주와 마찬가지로 간호사 본인이 건강한 상태로, 환자에게 안전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고, 그 일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게 될 것이고, 많은 유휴간호사들 또한 다시 임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호사에게 적절한 양의 업무와, 일하고 싶은 근무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